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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 전도 동력 기본훈련

카이노스123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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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도자 전도 동력 기본훈련

 

훈련목표

전도는 방법보다 원리가 중요합니다. 전도는 배워서 된다기 보다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자가 되기 위하여 먼저 전도동력의 기본적인 의미와 신학적 기반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본 강의에서는 전도동력과 성령의 능력의 삶을 알아보고 성령 받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배우고 훈련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 이상 큰 축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죽은 자가 생명을 얻고 저주 받은 마귀의 자녀가 축복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3:9~10) 성경은 우리가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그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의지의 선택으로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부르시지 않으면 한 사람도 주님께 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6:65)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 받는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것이 믿음으로 된다고 신학적으로 말을 하지만 사실 그 믿음도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로 우리에게 이것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래서 본장에서는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며, 또 실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이며, 그 성령을 받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기독교의 시작과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1)기독교의 시작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기독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 합니다. 왜냐 하면 그것이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역사의 시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필요해서 인간이 만든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구원의 역사로 성령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2000년 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인간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믿는 자 속에 성령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기독교는 시작된 것입니다.

 

(2:32~33)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이처럼 주님의 약속을 믿는 자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오셔서 함께 하시는 체험을 한 자들이 모여서 기독교는 시작 된 것입니다. ,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그 말씀을 믿는 자 속에 이 부활의 주님은 오신 것입니다.

이는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14:19~20)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처음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는 예수님의 많은 기적과 표적을 동반한 하나님 나라 선포에 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수만 명씩 예수님을 추종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자 그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고향을 향하여 떠나가기도 했습니다.(24:13~14). 그러나 그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면서부터 함께 모여들어 교회는 이루어졌으며 복음은 전파된 것입니다.

 

(24:32~34)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그러므로 기독교는 인간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사람들이 만든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우리 주님은 부활하시어 약속을 믿는 자 속에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므로 능력의 삶을 살게 하시며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삭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2)진정한 기독교인의 탄생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이 영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리적 기독교인으로 탄생되는 것,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으로 어떤 존재, 어떤 정체성을 갖는가를 잘 알고 체험하는 자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같은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생명과 지위와 신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8:15) 그러려면 우리 속에 예수님과 같은 생명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으로 이루어집니다.

 

(4: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것을 영적으로 더 자세히 말하면 부활하신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 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부활하신 예수님과 영적인 직접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지적으로 교리만 안다고 하면서 부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과 영적으로 직접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면 엄밀히 말해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영으로서는 우리 속에 즉, 믿는 자 속에 오시어 주님이 내 속에 사시는 것입니다.(16:19, 2:33)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3)21세기 주님이 오심

주님의 초림은 2000년 전에 마리아의 몸을 빌리어 말씀이 성육신 하시어 예수님으로 오시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보고 진리와 은혜를 체험하여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1:14, 18)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지금 21세기 현재의 예수님은 어떻게 오시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는 우리의 몸을 입고 지금 여기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인인 바로 우리를 보고 예수를 체험하고 믿게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으로 주님이 우리 속에 사시는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전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6:19~20)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므로 우리 구원 받은 성도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의 삶이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서 주님께서 지금 여기서 나를 통하여 주님의 삶을 사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참으로 영안이 열린 복된 사람입니다.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분명히 바울 사도는 자기 속에서 주님이 자시 대신 사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지금 여기에 나를 통하여 이 역사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 주님을 나타내고 계신 것입니다.

 

4)주님이 성령으로 오시는 환경

 

주님께서 2000년 전에 초림을 할 때 이 세상은 영적으로 암흑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아보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배척하고 어렵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둠의 세력인 사탄의 방해 세력이 예수의 초림의 역사를 막는 것입니다.

 

(1:10~11)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사탄의 역사는 예수님의 오심을 방해를 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수를 죽이려고 수 없는 어둠의 역사를 자행했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통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태어날 때도 그 당시의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하필이면 그때 영을 내려 호적을 하게하여 어렵게 한 것입니다.(2:1)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을 하러 베들레헴이라는 동네로 내려갔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사관 즉, 거처를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굿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겸손하여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난 것인 양 쉽게 찬양을 하지만 사실은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엄청난 어둠의 사건인 것입니다. 또 물리적으로 보아도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여 낮에는 상당히 덥지만 밤에는 영하의 온도까지 떨어지는데 과연 산모가 아이를 마구간에서 출산하는 것이 그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배후에 사탄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기 예수를 천군천사들을 통하여 보호하셨습니다.

 

(2:12~13)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사탄의 방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분봉왕 헤롯을 통하여 더 심하게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는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에수님께 경배하러 왔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도 경배한다고 아기 에수 낳은 곳을 알려 달라고 했지만 나중에 그것이 거짓임이 들어납니다. 동방박사가 꿈에 천사들의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가자(2:12) 그는 화가 나서 베들레헴 지역의 어린아이를, 그 때를 기준으로 두살 아래 아이들을 다 죽이는 폭거를 자행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은 천사들의 지시를 받아 애굽으로 피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2:13~14)

 

(2: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처럼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성육신 하신 것. , 말씀이신 주님이 이 땅에 초림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지금 성령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믿는 자 속에 오시는 것도 대단히 영적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둠의 사탄 마귀의 역사는 똑같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더 어렵게 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가 이 세상에 완성되어 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는 사자처럼 사탄은 택한 자까지 넘어뜨리고 시험들게 하여 성령으로 오시는 주님의 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12:12, 벧전5:8~9)

 

(24: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그래서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어렵고 때로는 낙망이 되는 환경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건이나 상황이 어렵다고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위축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과 같은 상황인 가난, 핍박, 환란, 어둠 속에서 빛의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고후4:12, 고후1:9~10)

 

때로는 사탄은 우리의 삶을 절망의 낭떠러지로 밀어 넣어 죽이려고 합니다. 가난, 질병, 교통사고, 가족의 죽음, 이혼, 사랑하는 이와 이별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절대 절망의 사건이 일어나게 하지만 부활의 주님은 이런 죽음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설적인 구원의 축복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죽이려는 한 가지 일 밖에 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도 오히려 살려내어 영생의 복을 부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자들이 더 간절히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게 되어 주님이 오시는 길을 열게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둠은 빛이 오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5:9)

 

(1:3~5)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고후4:12)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2.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1)주님이 직접 사실 때 나타납니다.

 

우리 성도는 성령이 임하시므로 구원을 받고 능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은혜의 종교입니다. 인간의 노력이 있다 해도 그것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로 노력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소원을 두고 행하게 될 때 그 일도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격히 말을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겉으로 보면 우리가 하는 것이지만 실제는 우리 속에 오신 주님이 내속에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 때 주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4:10-1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성령님이 오시면 실제로 우리 부활의 주님이 내게 주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나를 통하여 주님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속에 놀라운 능력인 권능(뒤나민)이 임하는 것입니다.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능력의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어떤 환경이나 부정적인 역사도 극복하고 승리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권능은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 속에 오시어 직접 사실 때 나타나는 신적인 능력입니다.

 

2)성령의 권능은 전도 동력이 됩니다.

 

전도의 동력은 우리가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오신 주님만이 소유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하시어 우리의 생명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자신이 전도의 능력이며, 동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므로 주님 자신이 우리 속에서 사실 때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 권능은 전도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요, 그분이 부활한 것도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요, 또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오신 것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전도하기 위함입니다(1:8)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이루는 삶이 전도요 선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직접 이 전도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1:38). 우리도 성도의 삶의 목적, 목회의 목적이 영혼 구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 사실을 깨닫고 주님을 믿고 순종하기로 결심하는 자 속에 성령의 역사로 주님이 직접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전도자의 인격이나 은사를 통하여 놀라운 전도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 내 속에 성령으로 오신 주님이 나의 은사나 재주를 통하여 직접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때 나에게 나타나는 전도의 능력이 바로 전도의 동력입니다.

 

(2:40-41)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본문은 베드로를 통하여 하루에 3,000명이 전도되어 세례를 받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전도의 사건도 자세히 보면 베드로를 통하여 일어난 것 같지만 실제는 베드로 속에서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속에서 전도의 동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베드로 속에 성령으로 오신 주님의 직접 사심이 전도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3) 전도의 동력의 체험

 

이처럼 전도의 동력이 나타나면 우리가 전도 대상자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영혼을 우리에게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의 힘과 노력으로 전도를 한다는 전근대적인 전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전도는 내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나의 노력이나 애씀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의 부담에서 자유할 수가 있습니다(15:25-26).

 

전도하는 방법도 우리의 노력이나 전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도자(성령으로 연합한 자가 되어 주님이 대신 사는 자)가 되면 하나님이 택한 영혼을 보내주시어 구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전도자가 있으면 전도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가 먼저 전도의 기술이나 방법을 아는 것보다 전도자가 되는 것이 먼저이고 훨씬 중요합니다. 마치 자석에 자력이 있으면 쇠붙이가 붙는 것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동력을 받은 전도자입니다(5:15-16).

 

(5:12-16)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그래서 전도의 동력을 체험하는 자는 자기가 전도를 하고 있지만 자기 속에서 또 다른 인격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확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동력을 체험하면 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이나 부정적인 사건과 상황, 환경이 와도 이를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확신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주님이 우리 속에 사시며 영생으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일 5:11-12).

 

3. 증인이 되리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반드시 증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증인(마르튀스)은 법정용어로 누구 편에 서서 유리하게 증거를 세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령을 받아 권능 즉, 주님이 우리 속에서 주님의 삶을 사시게 하여 그 분을 세상에 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고 영혼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2:42-47).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것은 초대 교인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주님과 연합된 삶에서 성공함으로 그들의 삶 소에서 주님의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은 하나님을 볼 수가 있고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도 성전의 미문에 앉아 있는 나면서 앉은뱅이인 자를 주님의 이름으로 일으키는 사건도 사도행전 3장에 나옵니다.

 

(3:6-8)“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여기서 놀라운 것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그가 치유를 받고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인간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앉은뱅이가 치유된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베드로 속에서 주님을 보고 체험을 한 것입니다. 사실은 베드로도 분명히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앉은뱅이가 일어나자 베드로는 자기를 우러러 보려는 사람들을 보며 정색을 하고 자기의 경건의 능력으로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증언하며 이는 전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일어났다고 말을 합니다(3:12).

 

(3:15-16)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는 분명히 베드로 속에 주님이 살아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통하여 주님은 사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주님과 연합된 삶 속에서 철저히 순종하여 주님을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전도 동력은 크게 일어나고 구원의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19:11-1).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 전도에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명령하는 기도로 고치니 사람들이 신이 내려 왔다고 소동을 벌이자 그들은 소리쳐서 외치길 우리는 너희와 성정이 같은 인간이라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4:11-15). 이들 속에서도 주님이 살아서 역사하심으로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 속에서 주님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은 이처럼 예수 믿는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이 세상에 대하여 주님이 파송한 주님의 중보자가 되는 것입니다(16:14-15).

 

(17:18-19)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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