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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염려

카이노스123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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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한 걱정

현대인은 수 없이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산다.

그중에는 밤잠을 설칠만큼 심각한 것도 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있다.

그런 걱정거리들 중의 어느 것이 진짜일까?

이런 것을 연구한 어느 미국 대학의 심리학팀이 있다.

그 조사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 40%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공연한 걱정을 그 만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걱정거리 중의30%는 이미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제와서 걱정한다고 되는 일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쓸데없는 걱정거리들이다.

10%는 병에 관한 걱정거리다. 그중엔 실제는 걸리지 않을 병에 관한 것도 많다.

진짜로 걱정할만한 것은 8%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8% 중에서도 정말로 머리를 싸메고 걱정할만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결,

우리는 아무리 걱정해야 소용도 없는 일들에 대해 걱정들을 하고 있다.

니면 쓸데 없는 걱정들을 가지고 괴로워하고 있다.

 

피일 박사가 대답하기를, "그래요? 여기서 가까운 곳에 15천명의 인구가 있으나 그 중 한 사람도 문제거리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걱정이 쌓인 그 친구가 물었다.

"목사님 제게 걱정없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도 그런 곳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피일 박사가 대답했다. "바로 이넘어 공동묘지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 뿐이라는 것이다. 갈등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 삶의 지혜

 

옛날 오래된 학교에서 종을 치는 종치기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종을 치다가 노이로제에 걸렸읍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당신은 왜 그렇게 행복하지 못합니까?"라고 물었읍니다.

그 종치는 사람이 말했읍니다.

"저는 이 종을 삼만 육천 번을 쳐야 합니다.

매일 이 학교에서 열 번씩은 종을 칩니다. 일주일이면 칠십 번, 한달이면 삼백 번, 일년이면 삼천 육백,

내가 이 일을 끝내기까지는 앞으로 10년이 더 남았읍니다."

 

한사람이 보다 못해서 이런 지혜로운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형제여! 하루에 열번씩만 종을 치시고 한번에 한 번씩만 종을 치시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어제와 내일을, 오늘의 현장에 갖다 놓고 염려을 더해 가면서 염려의 닻줄에 매여 오늘을 버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읍니까? 이 충고를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나라에 족하니라."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염려

 

1856년 영국의 의료선교사이며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큰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그를 음해하려는 원주민 추장 음부루마의 야생지를 통과하려 했기 때문이었다.그날 밤 리빙스턴은 평소 약속의 말씀으로 여겼던 성경 마태복음 281820절 말씀을 읽었다.그리고 다음과 같이 일기를 적었다.

1856114.가장 권위있고 신성한 이 말씀은 불안의 종식의미한다.죽음이 온다해도 나는 몰래 횡단하지 않겠다. 나는지금 평안하.하나님 감사합니다

 

*염 려

 

염려는 누구나 버릇처럼 하기 쉬운 것이다. 안해야지 하면서 다시 하고, 안한다고 하면 먼저 한다.

어떤사람은 염려를 안개에다 비유하고 있다.

광화문 일대를 30미터 두께로 짙게 덮을 수 있는 안개가 실은 한잔의 물이 600억개의 물방울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염려가 처음에는 한잔의 물처럼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의 내면세계를 온통 가릴 수 있는 안개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안보인다. 하나님도, 그의 약속도, 응답의 손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많은 염려가 자주 우리를 괴롭힐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염려는 무엇인가?

 

worry라는 영어 단어는 μεριμναω (merimnao)라는 희랍어 동사에서 생겼다. 그런데 이 단어는 "나누다"라는 의미의 메리조와 "마음"이라는 의미의 누스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염려란 "마음을 나눈다"는 의미이.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1:8)라고  말하고 있다. 염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분열된 사람이다.

염려는 죄악이다.

염려한다면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비난하는 것이다. 8:28, 13:5...

염려는 하나님의 성전인 인간의 신체에도 해롭기 때문에 죄이다.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마음을 한 곳에 쏟는 사람보다 염려하는 사람이 더 많이 사고를 당한다는 것이다.

 

염려의 치료:

1. 기도하기를 힘쓰라. 18:1

2. 기뻐하기를 힘쓰라. 4:4

3. 신뢰하기를 힘쓰라. 6:25-34

4. 일하기를 힘쓰라. 37

5. 당신의 축복을 세어보기를 힘쓰라.

6.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하라. 빌2:4

 

 

*근심의 이유

 

만일 우리가 우리를 근심하게 하는 것들을 구체적인 목록으로 작성할 수만 있다면 근심을 치유하기는 쉽다. 목록을 작성해 보면, 얼마나 모호하고 무익한 것을 가지고 근심했는가 이해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근심을 많이 하는 것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가지고 근심한다. 이것은 전체의 40%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근심한다고 해서 되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을 가지고 근심한다. 이것이 30%이며, 세번째로 불필요한 건겅 걱정이 12%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시한 잡동사니에 대해서가 10%이다. 진실로 근심해야 될 일을 가지고 근심하는 경우는 8%에 지나지 않는다.

 

*나폴레옹의 염려

 

나폴레옹은 "당신의 일생 중에 가장 무섭다고 여긴 것은 어느 때입니까?" 라는 물음에 대해, "그것은 일주일에 한번, 단골로 다니는 이발사를 불러 수염을 깎을 때이다"고 대답했답니다. 만일 그 이발사가 적들의 꼬임에 빠져, 적의 간첨이나 되지 않았을까? 만약 적의 간첩이 되었다면, 그 날카로운 면도날로 목을 푹 찌른다면...이런 생각을 하면서 걱정과 염려를 했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염려를 품고 사는 것은 불신입니다. 주님은 염려를 맡기라고 하셨습니다.맡기는 것은 믿음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염려는 흔들의자와 같아

 

염려란 마치 흔들의자와 같은 것이다. 흔들흔들하는 의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 의자에 앉아서 아무리 흔들어 보십시요. 여전히 제자리에 그냥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제자리입니다. 아무리 염려를 해도 제자리일 뿐 한 발자국도 못 나갑니다. 나는 노상 그자리에 서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염려 속에 몰두하여 계속 염려하고 또 염려하며 염려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봅니다. 해결할 수 있다면 염려하십시요. 그러나

해결할 수 없다면 왜 염려하십니까? 여기에 염려의 비생산성이 있습니다.

'염려는 비생산적인 것이며 비신앙적인 것입니다.

염려는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있는 하나님을 향한 , 하나님 앞에서의 행동입니다.

염려는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 단순한 반응에 불과히지만 신앙이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행동입니다.

 

*풍년이 들어도 걱정

 

어느 늙은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밤낮으로 걱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어느 해에 풍년이 들어 그 부인의 밭에서는 감자가 많이 수확되었다.

그래서 교회 목사가 생각하기를 "이번에는 걱정하지 않겠지"하여 그 부인을 길에서 만나자 "감자가 잘 되었다니,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부인은 "감자는 잘 되었습니다만 작년에는 썩은 감자가 많아서 돼지를 먹였는데 올해는 썩은 감자가 없으니 어떡해야 합니까?" 하고 또 걱정의 소리를 하였다.

 

*정신병자의 '만약에'

 

작가 아더골든은 미국 종교 및 정신의학재단의 공동 창설자인 즈랜튼 박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뉴욕에 간 적이 잇었다.

골든 씨는 박사를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서 그를 기다리며 자신의 과거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브랜튼씨의 눈에는 근심하는 것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아더 무슨 일이 있었소?"

그러자 작가는,

"여기 앉아서 만약. 만약. 만약에만 생각하게 되었어"

그러자 브랜튼씨는 식사한 뒤에 자기의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다. 그들은 브랜튼씨의 사무실로 가서 녹음테이프를 들었다.

"세사람의 말이 녹음되어 있습니다. 모두 내가 치료한 환자인데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봐요"

골든씨는 거의 1시간동안 테이프를 다 들었다. 그러자 브랜튼씨가 이렇게 물었다.

"그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나 말해주겠소?"

아더 골든은 생각한 후에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해주겠오, 그들은 모두 '만약--- 만약---만약---'늘어놓았습니다. 이 말 때문에 정신병이 생긴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지나친 염려 때문에 그들은 정신적 이상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오지않은 미래를 미리염려치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불안과 염려에서 자유를 얻고 참 평안을 소유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세 고민

 

실존 철학자 하이덱거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고민 중 첫째는 물질에 대한 것, 둘째는 사람에 대한 것, 그리고 세째는 자신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 즉 돈을 벌려 한다. 그것이 성공하면 다음으로는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려 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하여 고민을 느끼게 된다.  

 

첫째의 고민을 누구나 노력하면 풀수 있다.

둘째의 고민을 푸는 자는 드물다.

세번째의 고민은 아무도 풀지 못한다."

 

이 세째의 고민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만이 해결할수 있는 것이다.

 

*시장의 장화를 밟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단편소설에 이런 것이 있다. 제정 러시아 시대, 시청의 동서기가 잘못해서 시장의 장화를 밟았다. 그는 즉각 사과를 했지만 시장은 누군가와 열을 올리며 토론 중이어서 그를 보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시장이 나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나는 목이 달아나고 그럼 가족들은 어떻게 되나?"하는 걱정 끝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결국 다음날 시장을 찾아가 잘못을 빌기로 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마 나를 용서하지 않을 모양이구나." 다음 날 그는 다시 시장을 찾아가 애원을 했다.

. “한번만 봐주십시요. 모르고 그랬읍니다. 저는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 시장은 화가 났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매일 찾아와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늘어 놓는게 아닌가? "이 녀석 너 미친 놈 아니냐?" 동서기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다. "시장은 끝까지 나를 용서하지 않는구나." 

다음 날 아침 아내가 그를 깨우려고 흔들었을 때 그는 걱정과 절망으로 지쳐서 피곤해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상이 그 줄거리인데 사실 인간이 하는 근심 걱정 중 8,90%가 다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시장은 구두를 밟았던 그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으며 그 일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자기 스스로 지나친 근심과 걱정의 구렁텅이를 파고 그 속에 빠져 버렸던 거였다.

 

*건강염려증환자

 

전혀 아픈데가 없는데도 스스로 환자라고 단정, 병원을 전전하는 "건강염려증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또 이런 환자들 중에는 의사가 특별한 병이 없다는 진단을 내려도 믿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쫓아 다니다 마침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으며, 정신적인 고통이 실제로 신체적인 병으로 나타나는 사례도 많다는게 병원관계자들의 애기다.

순천향병원 신경정신과의 경우 허루 평균 내원 환자 60여명 중 20%에 해당하는 12명 정도가 건강염려증 환자라고 의사들은 밝히고 있다. 이 병원 정박사(신경정신과)"산업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 과정 속에서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내분비선이 일시적인 기능변화를 가져와 생기는 신체반응을 특정 질병으로 의식하는 사람이 많으며, 이런 의식이 장기화될 경우 병원까지 찾게 된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부터 이런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해 매년 10%정도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병원의 허 교수(내과)도 자신이 진료하는 하루 평균 50여명의 초진 환자 중 10-30명이 전혀 병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톱밥을 켜지말라

 

필라델피아지 편집인인 프레드 셰드씨는 옛 명언을 멋 있게 표현할 줄 아는 재질을 가진 사람이다. 어느 대학 졸업식에

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중에 나무를 톱으로 켜 본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요." 거의 모두 손을 들었다. "그러면 톱밥을 켜 본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물었으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물론 여러분은 톱밥을 켤 수 없지요." 셰드씨는 외쳤다. "톱밥은 이미 켜졌기 때문 이지요. 과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걱정하는 것은 톱밥을 켜려는 일과 같습니다."만일 어떤 사람이 톱밥을 켜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하시겟습니까?

과거의 문제로 염려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이와같은 것입니다.

 

*아메림노스(염려하지 않는)

 

한 신학자가 일세기를 살던 초대교인들의 삶이 기록된 서류들을 뒤지다가 그들의 문서에서 이러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을 발견했습니다. Τιτεδιος Αμεριμνος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가 무엇입니까?  "염려하지 않는 사람, 티테디오" 란 뜻 입니다. 

아메림노스라는 단어는 별명처럼 붙여진 것 같습니다. 뜻은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염려하다'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메림노스'인데 여기에 반대를 나타내는 '아'를 붙이면 아메림노스 염려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 된다. 

폴 아메림노스 , 염려하지 않는 사람 폴,  로이 아메림노스 , 염려하지 않는 사람 로이" 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초대교인들은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독교인의 믿음과 인격 가운데 귀중한 부분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처럼 제일 염려가 많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걱정했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세금을 안 내면 어떻게 되나/

로마의 군대에게 잡히면 어떻게 되나/

파도에 빠지면 어떻게 되나/

 

이렇게 걱정 많던 베드로그가 평생을 걸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 삶을 통해서 이 염려라는 문제를 해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마지막 메세지는 베드로 후서 마지막 장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주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

 

영국의 위대한 성자, 기도의 성자인 죠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다.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다. 그러나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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